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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기도시집(Das Stunden-Buch)’이 시인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I Live My Life"라는 제목으로 독일어 원문과 함께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61]번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릴케를 독일 시단에서 중요한 서정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대표작이다. 제목은 BTS 지민이 ‘셋 미 프리 파트 2(Set Me Free Pt.2)’ 뮤직비디오에서 몸에 새겼던 시구이기도 하다. 평생 릴케 연구에 매진해 온 김재혁 고려대 독문학과 명예교수가 2023년 『두이노의 비가』에 이어 이번에도 독일어 원문에 충실한 탄탄한 번역을 선보인다.
이제 시간이 기울면서 나를
맑은 금속성 울림으로 툭 칩니다.
내 감각이 떨려 옵니다. 난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리하여 나는 조형의 하루를 손에 쥡니다.
내가 바라보기 전에는 완성된 것은 없었습니다.
모든 생성은 멎어 있었습니다.
나의 눈길은 무르익어, 보내는 눈길마다
원하는 것이 마치 신부처럼 다가옵니다.
내게 하찮은 것이란 없으며, 그래도 나는 사랑하여
그것을 황금빛 바탕
위에 크게 그려
높이 쳐듭니다, 그러면 그것이 누구의
영혼을 풀어 줄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사물들 너머로 펼쳐지며 점점 커 가는
동그라미들 속에서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 동그라미를 마무리 지을지 알지 못하지만
나 온 힘을 다해 해보렵니다.
나는 신의 주위를 맴돕니다, 태곳적 탑을,
나 수천 년이라도 돌고 돌 것입니다.
나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내가 매인지, 폭풍인지
아니면 한 곡의 위대한 노래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수도사 생활의 서」,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에서
한편 탄생 150주년(2025년)과 사후 100주년(2026년)을 기념하여 올해부터 내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오스트리아 슈타이어의 슈티라부르크 예술문화협회가 주최하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페스티벌이 연극, 퍼포먼스, 강독회, 학술 심포지엄 등으로 진행된다. 독일 콘스탄츠에서는 “릴케의 파리: 1902년부터 1910년까지의 파리를 배경으로 문학과 무용이 함께하는 여정, 에릭 사티의 음악과 함께”라는 제목으로 2025년 5월 24~25일에 예술가들이 모여 릴케의 시와 산문, 그리고 춤 공연과 에릭 사티의 라이브 피아노 음악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을 선보인다. ‘국제 릴케 협회’는 ‘프라하에서 유럽으로’라는 제목으로 2025년 9월 17일부터 20일까지 프라하에서 열린다. 오스트리아 슈타이너에서는 2025년 5월 16일에 “시간이 줄어들며 불어닥치는 미래”라는 제목의 낭송회가 열린다.
● 예술적 창작은 릴케에게 성스러운 ‘기도’ 과정이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다: 릴케의 기도시집』 1부 “수도사 생활의 서”(1899년)는 베를린 근교의 슈마르겐도르프에서, 2부 “순례의 서”(1901년)는 클라라 베스트호프와의 신혼 시절에, 3부 “가난과 죽음의 서”(1903년)는 파리에서 가난과 죽음의 고통을 경험한 후에 이탈리아 비아레조에서 집필했다.
『기도시집』의 주된 서사를 이끌어 가는 시적 화자는 러시아 정교 교회의 한 수도사이다. 이 수도사는 성화를 그리는 화가이자 시를 짓는 시인으로, 시집의 세 부분을 관통하는 변화무쌍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 예술적 창작은 릴케에게 성스러운 ‘기도’와도 같으며, 자기 삶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형상화하는 신성한 과정이다.
―김재혁, 「작품에 대하여」,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에서
1부 “수도사 생활의 서”는 러시아정교회의 이콘화 및 러시아 민중의 기도하는 삶에 받은 감명을 시적 자아 탐구의 태도로 승화시킨다.
시인은 인생의 성숙 과정을 “사물들 너머로 펼쳐지며 점점 커 가는/ 동그라미들 속에서”라고 묘사한다. 이는 시인이 쌓아 올리는 경험의 층위와 삶의 넓이를 확장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인생의 끝에 가서 “마지막 동그라미를 마무리 지을지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삶을 종합하고, 마지막 장을 장식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김재혁, 「작품에 대하여」,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에서
2부 “순례의 서”에서는 현실과 영혼의 순례 과정을 통합하는 문학적 성숙을 이뤄 간다. “릴케는 우리에게 새로운 신을 경험하게 하며, 이는 내면의 신성한 창조 과정을 통해 우리 스스로 신을 재구성하고 이해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내 눈빛을 꺼 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순례의 서」,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에서
3부 “가난과 죽음의 서”에서 시인은 “저마다 고유한 죽음을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이는 “사랑과 의미와 고난을 함께한/ 삶에서 우러나는” 죽음이다. 시인은 가난과 죽음이라는 어두운 개념들을 깊이 있게 성찰하여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숙고로 긍정적인 승화를 이뤄낸다. 릴케는 비루한 현실을 문학적 승화를 통해 의미 있게 재창조함으로써 우리에게 보다 더 근원적인 자유를 추구하도록 촉구한다.
● 1973년 시작한 국내 최고(最古) 문학 시리즈!
‘카르페 디엠’의 시인 호라티우스로부터 영화 「패터슨」의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까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황무지』, 『악의 꽃』, 페르난두 페소아, 미국 시문학계의 이단아 찰스 부코스키, 19세기 대표 시인 에밀리 디킨슨 등 반세기 동안 엄선된 시선집으로 가장 오랜 생명력을 이어 오고 있는 국내 최고 문학 시리즈 ‘세계시인선’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