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 Overview
원서: The Cabaret of Plants: Forty Thousand Years of Plant Life and the Human Imagination
영국의 베스트셀러이자 식물학 바이블로 손꼽히는 『대영 식물 백과사전』을 집필한 리처드 메이비가 식물의 인문학, 과학, 문화사의 총체라고 할 만한 종합적인 저술을 내놓았다. 원제가 ‘식물의 카바레’인 이 책은 식물을 무대 중심에 올려놓고 인류와의 접경지대에서 펼쳐진 그들의 눈부신 활약을 드라마틱하게 추적한다. 분야는 에세이지만 정보가 많아 곱씹으며 읽어야 할 책이다.
구석기 동굴 벽화에 나타난 식물의 존재부터 미모사가 어떻게 ‘지능’을 이용해 학습하는지에 대한 최신 연구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식물과 마주한 순간을 되짚어본다. 그리고 역사, 문학, 과학, 식물학, 문화의 교차점 그 중심에 놓인 식물을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중세 시대의 의사와 주술사, 빅토리아 시대의 계몽주의 사상가와 시인 및 작가, 근대 미술계를 이끈 화가들이 등장해 식물과 함께 춤을 추며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꽃피운다. 이로써 식물을 중심으로 인류사를 돌아보는 종적 연구와 세계 곳곳, 학문의 각 분야마다 등장하는 식물에 대한 횡적 연구를 오가는 지적 여정을 선보인다.
출판사 리뷰
자연 그 자체에서 농작물로, 종교적인 숭배 대상까지
인류사에 등장한 식물의 변천사
4만 년 전 구석기인들이 그린 동굴 벽화에는 질주하는 말, 사냥당하는 들소 등의 동물을 비롯해 물리 세계 너머의 추상적인 개념까지 등장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식물의 이미지는 드물다. 예나 지금이나 식물은 동물과 인류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이러한 식물의 부재는 여러 인류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동굴 벽화의 이미지를 구석기인들의 사유의 결과물로 해석했다. 즉, 식물은 자연 그 자체의 존재였기에 예술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식물의 개념이나 이미지가 문서 기록이나 예술 작품에 등장한 것은 자연에 대하여 인간이 고립과 소유의 개념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야생 그대로의 자연이라 여기던 식물은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농경이 시작되면서 인류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주목이라는 나무가 있다. 중세 시대에 오래된 주목의 존재는 신성 모독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교회 건물 옆 거대한 주목을 신령한 존재로 모시며 따르는 신도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늙은 주목이 교회 가까이에서 자란다는 사실은 고대 종교가 번성했고, 기독교 교회가 나무를 숭배하던 장소를 전용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뉴에이지 신화의 기원이다. 나무의 연대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던 시절에 그 둘레와 높이로 추정된 나무의 나이는 인류의 역사와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하는 데 충분한 근거가 되었다.
약초와 독초를 구별하며 분화한 중세 주술사와 의사
전리품과 고급 상품으로서 난초를 유통시킨 수집가
중세 사람들은 식물과 인체의 외적 유사성을 기준으로 식용 식물의 효과를 상상하고 약재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노란색 꽃은 황달에, 얼룩무늬 잎은 발진에 쓰였다. 인체의 모양과 유사해 동양에서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된 인삼은 대표적인 예시다. 중국과 한국에서 인삼은 귀한 약초였기에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고, 동양의 만병통치약 신화가 서양에까지 전해지면서 환금 작물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외적 유사성으로만 약초와 독초를 구별하는 것은 위험성이 컸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에서 의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구분되지 않던 샤머니즘적 주술사와 전문직으로서의 의사, 대체의학과 서양 의학이 분화되기 시작했다.
식민지 개척 시대, 제3세계에서 자라는 식물은 탐험가들의 전리품이자 수집품이었다. 유럽인들은 식민지의 원주민과 그들의 문화는 ‘미개하다’고 생각했지만, 특이한 형태를 보이거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제3세계의 식물은 아끼고 사랑했다. 영국 큐 식물원과 같은 빅토리아 시대의 몇몇 박물관에는 식민지에서 들여온 거대 식물이나 특이한 난과 식물을 관람하기 위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미개한’ 식민지의 식물은 영국 건축물에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중심에서부터 퍼져나가는 아마존 수련의 잎맥은 세계 최초의 철골 건축물인 수정궁의 뼈대를 짓는 데 영감을 주었다.
식물들의 높은 인기와 비싼 가격은 그들의 생존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몇몇 야생종의 경우 자생지에서 무분별하게 채취되어 수출되는 바람에 멸종되고 말았다. 다행히 멸종 위기를 면했다고 하더라도, 척박한 야생의 땅에서 적응하도록 진화한 식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 없이 무조건 ‘비옥한’ 땅에서 기르고자 했던 서양인들로 인해 식물들은 운반 도중에 죽어버렸다. 간신히 목적지에 살아서 도착하더라도 온실 환경이 맞지 않아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인류사와 지리학의 집약체이자 신화의 기원이 된 목화
유럽 화가들의 빛에 대한 감각을 바꾼 식물 그림
어떤 원소를 다른 원소로 바꾸고자 했던 연금술사의 사상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세에는 식물 역시 다른 유기체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14세기 후반 서유럽에는 반식반수半植半獸 신화, 즉 몸체는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식물이지만 그 열매는 털이 난 동물에 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식물 양’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던 전설의 주인공은 솜털 꼬투리를 품고 있는 목화였다. 하지만 저자는 목화 개체의 크기가 작아 그리 위협적인 생김새가 아니며, 당시 면직물이 흔히 사용되었던 터라 사람들에게 그리 생경하지 않은 식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반식반수라는 괴기한 전설의 기원을 찾기 위해 목화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 즉 목화의 전파과정을 들여다본다. 여기에는 서구 문명이 식민지를 침략하고 지배하면서 원주민을 몰살했던 폭력적인 역사가 작용했다.
고대 미술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식물 이미지는 점차 회화의 중심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풍경화뿐만 아니라 정물화에서 나타난 식물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미술사를 엿본다. 지중해 지역의 상징인 올리브 나무는 유럽의 음울한 기후와 빛에 익숙해진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르누아르나 고흐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은 올리브 나무를 작품에 담아내려고 애썼다. 미술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식물 미술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인도에서 싹을 틔웠다. 동인도 회사에 소속되어 영국인 상사의 요구에 따라 그림을 그렸던 인도인 화가들은 ‘컴퍼니 아트’를 탄생시켰다. 이들은 섬세한 세밀화의 전통을 가진 무굴 문화와 유럽에서 유행하던 원근법을 결합해 식물 미술을 발전시켰다. 독창적인 무늬와 독특한 배치로 그려낸 식물 이미지와 빛과 열기에 대한 새로운 감각이 유럽으로 건너와 근대 회화의 기반이 되었다.
계몽주의 사상가와 시인을 혼란스럽게 만든 파리지옥
청초한 이미지로서의 꽃 vs 매개 곤충을 유혹하는 도발적인 꽃
서양 철학에서 우주 만물의 배치는 하느님이 맨 위에 자리하고 무생물인 바위가 가장 아래에 위치한 위계질서를 기초로 했다. 따라서 위계가 더 높은 생물의 특권이라 간주된 움직임을 보이고, 마치 지능을 갖춘 것처럼 학습을 하는 식물의 존재는 계몽주의 사상가와 과학자들의 상식을 전복하고 호기심을 자극했다. 파리와 같이 작은 곤충, 즉 식물보다 우월한 동물을 잡아먹는 식충 식물이 발견되자 이 식물이 유기물을 어떻게 감식하는지, 어떻게 운동 자극이 전달되는지 밝혀내기 위해 과학적인 연구가 활성화된다. 이래즈머즈 다윈은 끈끈이대나무나 파리지옥과 같은 식충 식물의 섬사를 자극함으로써 식물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밝히려 노력했고, 후대의 연구자들은 위계질서를 뒤집고 식물의 움직임을 ‘동물 근육의 수축’이라고 비유했다.
이렇게 식물을 대상으로 과학적인 연구가 이뤄지기 전, 식물은 문학 작품 속에서 사랑의 기표로 자주 사용되곤 했다. 한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수동적인 특성과 아름다운 꽃 모양으로 인해 식물은 낭만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워즈워스의 시에 등장하는 수선화다. 하지만 악취를 풍기는 열대 식물이 발견되고, 거대 식물의 뿌리와 줄기의 물리적 힘이 부각되면서 공포 소설에서 두려운 존재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인간의 성기와 유사한 모양새를 가진 몇몇 난초는 성적인 은유로 종종 사용되며 식물 포르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이런 식물의 성적인 이미지는 매개 곤충을 유혹해 대리 수분을 하는 식물의 생식과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암컷 벌을 흉내 낸 꽃잎으로 수컷 벌을 유인하거나 한번 대롱에 빠뜨리면 이튿날이 되어서야 꽃가루를 잔뜩 묻힌 채 매개 곤충을 풀어주는 식물의 수분과정은 진화를 위해 식물이 생식 능력을 최적화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기억과 학습 능력을 보이는 지능 있는 식물과
이웃 식물에 말을 건네는 식물의 언어
뇌라고 할 만한 기관이 없는 식물이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을 저장할 수 있을까? 최근 식물의 의사소통에 주목하고, 외부 자극이 반복해서 발생할 때 이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밝혀내는 ‘식물 지능’ 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미모사처럼 식물에도 행동 능력이 있긴 하지만, 정보를 조정한다거나 행동을 통제할 수는 없기에 이를 ‘지능’의 범주로까지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식물도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원시적 형태의 의식이 있다는 18세기의 논쟁이 지금까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또한 식물이 통증을 느끼거나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을 구분하고, 거짓말 탐지기를 연결하면 범죄자를 가려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과학적 연구와 근거로 뒷받침되고 있다.
식물 간 화학 물질을 이용한 의사소통은 좀더 활발히 연구된다. 페로몬을 발산해 이웃 식물에 곤충의 습격 사실을 ‘경고’해주는 사례도 밝혀졌다. 식물의 뿌리 체계는 땅속 균근곰팡이와 상호 관계를 맺고 네트워크를 형성해 영양분 협동체, 신호망을 만든다. 한 식물학자는 이를 ‘우드와이드웹wood-wide-web’이라고 지칭했다. 이렇게 신호망을 갖춘 숲속의 한 나무에 방사선 탄소 동위 원소를 주사하고 그 확산 범위와 속도를 측정한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식물의 ‘사고’나 ‘지능’의 개념은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식물들의 복잡하고 적극적인 감각 체계를 연구함으로써 식물은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생태학적으로 새로운 지위를 부여 받았다.
식물과 인간, 자연에 관한 에세이이자
식물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아카이브
식물에 관한 한 타고난 이야기꾼인 저자 리처드 메이비는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의 일화에서 시작해 과연 뉴턴의 사과나무는 어떤 종에 속하는지, 좀더 달콤하고 맛있는 사과를 맺는 사과나무 종의 확산에 곰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인류의 방대한 역사와 여러 분야에서 등장하는 식물에 관한 이야기들은 저자의 사적인 경험담까지 더해져 더욱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자생종 식물인 옥슬립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이 식물학계에 기여했음을 수줍게 고백하며 한 개인의 발견이 식물의 분포 지도와 백과사전의 설명이 어떻게 바꾸는지 설명한다. 이처럼 마치 춤을 추듯이 자유롭게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역사적 장면마다 곳곳에 등장하는 식물을 중심에 놓고 쓴 인류사는 너무나 유혹적이다. 이 책은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식물에 대한 고찰이자 식물과 함께해온 인류 역사와 학문을 총집합한 아카이브 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말: 식물들의 향연 6
1장 식물, 어떻게 봐야 할까? 21
1 빙하기 시대의 상징: 음식과 형태로서의 식물 26
2 새눈앵초: 앵초속 식물 43
2장 목재 인형: 나무 숭배 67
3 명성 숭배: 포팅걸 주목 75
4 로르샤흐 나무: 바오바브나무 99
5 빅 트리: 세쿼이아 110
6 므두셀라: 강털소나무와 대추야자나무 117
7 기원과 멸종: 우드소철나무 124
8 만능 일꾼부터 그린맨까지: 참나무 132
3장 경작 신화 159
9 켈트족의 관목: 개암나무 162
10 식물 양: 목화 179
11 생명의 양식: 옥수수 193
12 만병통치약: 인삼 205
13 식물 미꾸라지: 샘파이어 228
4장 실재의 충격: 과학자와 낭만주의자 235
14 생명이냐 엔트로피냐: 뉴턴의 사과 240
15 광합성의 암시: 박하와 오이 252
16 식충 식물의 도발: 파리지옥 263
17 워즈워스의 수선화 282
18 수분에 대하여: 키츠의 물망초 298
5장 새로운 땅, 새로운 비전 313
19 사막의 보석들: 프랜시스 마손의 불가사리 꽃과 극락조화 319
20 동반 성장: 동인도 회사의 융합 예술 329
21 명암의 대비: 인상파 화가들의 올리브 나무 337
22 지역적 특색: 곡식밭의 튤립과 수평선의 아마 346
6장 빅토리아 시대의 식물 극장 357
23 식물 보석: 고사리 열풍 365
24 ‘수련의 여왕’: 빅토리아 아마조니카 372
25 사라왁의 악취탄: 타이탄 아룸 386
26 어릿광대와 흉내쟁이: 난 공연단 391
7장 식물의 진정한 언어 431
27 나비 효과: 밤나팔꽃 435
28 수관 협동체: 공중 식물과 브로멜리아드 451
29 식물의 지능: 미모사 458
맺음말: 내세의 나무
감사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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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리처드 메이비 (Richard Maybey)
영국을 대표하는 자연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베스트셀러이자 식물학 바이블로 손꼽히는 『대영 식물 백과사전』을 집필했다. 『공짜로 얻는 음식』 『날이 다시 개었다』 『잡초: 무법자 식물의 이야기』, 휘트브레드 상, 영국 왕립문학협회의 온다체 상, 엑컬리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자연 치유』를 비롯해 30여 권의 책을 저술했고, 전기문학 『길버트 화이트』로 휘트브레드 전기작가상을 받았다. BBC 라디오에서 자연과 식물에 관한 시리즈를 진행했으며, 유수의 언론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한다. 2012년에는 왕립문학학회 회원으로 선임되었다. 『춤추는 식물』은 『가디언』 『텔레그래프』 『뉴스테이츠먼』이 2015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현재 노퍽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