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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출간한 후, 김연수는 여러 번, 그사이 “바뀌어야 한다는 내적인 욕구”가 강하게 작동하는 동시에 “외적으로도 바뀔 수밖에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고 언급한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그 시기를 건넌 뒤 쓰여진 짧은 소설들로, 변화에 대한 내적인 욕구와 외적인 요구가 옮겨놓은, 김연수의 ‘그다음’ 첫걸음인 셈이다.
작가는 이 소설들을 여러 서점과 도서관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독자들에게 들려주었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작품들은 독자와 직접 만나면서 조금씩, 계속 바뀌었다. 2021년 10월 제주도에서 2023년 6월 창원까지, 그렇게 여러 도서관과 서점에서 이 소설들은 쓰여지고, 읽고, 듣고, 또 ‘다시’ 쓰여졌다.
모든 사물들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던 작가는 이제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들여다보고 그 안의 이야기들을 직접 듣고, 다시 쓴다. 이야기를 지어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고 함께 나눈다. 끊임없이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던 소설 속 인물들은 이제 밖으로 걸어나와, 작가와 직접 대면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그전의 소설들과는 조금은 결이 다르게 읽힌다. 그렇게 이야기와 삶이 서로를 넘나들며 스며드는 과정을 함께 경험함으로써, 그렇게 태어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왜 어떤 삶은 이야기를 접한 뒤 새롭게 시작되는지, 그리고 이야기를 사랑하면 왜 삶에 충실해지는지, 저절로 알 수 있게 된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는 것.”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일생이 된다. 나는 그들이 매일 돌보는 것들을 생각했다. 당근이나 배추 혹은 감귤 같은 것들이 보살핌 속에 잘 자라 사람들의 저녁식탁까지 오르게 되는 과정을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근이나 배추 혹은 감귤 같은 것의 구체적인 모양과 질감과 향 같은 것들이 손에 잡힐 듯 또렷해졌다. 그들이 낮동안 열심히 일해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밤의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내게 하는 것. 나는 그들이 모여서 듣는 내 이야기도 그런 것이 됐으면 싶었다. 그날의 낭독회 이후, 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산문보다는 소설을 더 많이 쓰게 됐다. 강연회보다는 막 지은 짧은 소설을 읽어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낭독회를 더 자주 하게 됐다.
그런 낭독회에서 사람들에게 읽어주기 위해 쓴 소설들이 모여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됐다. (……) 낭독이 끝난 뒤에는 오신 분들께 이야기를 청했다. 어떤 일을 하시는지,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지, 이 낭독회에는 어떻게 오게 됐는지. 그러면 누군가 손을 들고, 다들 그 사람을 쳐다본다. 나도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_「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