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 Overview
저자는 2014년 겨울에 발표한, 제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아이를 찾습니다》를 기점으로 그전과 그 후의 삶과 소설 모두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해 4월에는 모두가 알고 있는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 그 이전에 쓰인 소설 《옥수수와 나》, 《최은지와 박인수》, 《슈트》에서는 무언가를 잃은 인물들이 불안을 감추기 위해 자기기만에 가까운 합리화로 위안을 얻고 연기하듯 살아간다.
그 이후에 쓰인 소설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신의 장난》, 《오직 두 사람》 속 인물들은 자위와 연기를 포기한 채 필사적으로 그 이후를 살아간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하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저자는 문학을 통해 혼란으로 가득한 불가역적인 우리 인생에 어떤 반환의 좌표 같은 것을 제공하고자 한다.
그해 4월엔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참혹한 비극이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뉴욕타임스 국제판’에 매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칼럼으로 쓰고 있었다. 4월엔 당연히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의문의 참사에 대해 썼다. ‘이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썼는데 팩트와 근거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편집자가 그 발언의 근거를 물어왔다. ‘근거는 없다. 그냥 작가로서 나의 직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라고 답했더니 그런 과감한 예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을 그만두었다. 작가는 팩트를 확인하고 인용할 근거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잘 느끼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나는 잘난 팩트의 세계를 떠나 근거 없는 예감의 세계로 귀환했다. (…) 깊은 상실감 속에서도 애써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
_‘작가의 말’에서
작가 김영하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이후 7년 만이다. 제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아이를 찾습니다」, 제3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를 포함해 일곱 편이 실렸다. 묘하게도 편편이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 그리고 ‘상실 이후의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들이다. 각자도생하는 하루하루가 외적 관계뿐 아니라 내면마저 파괴시킨다. 인간은 그 공허함을 어떻게 메우며, 혹은 감당하며 살아가는가.
*
특별한 부녀가 있다. 딸은 아버지에게 맞추어진 삶을 살고, 아버지는 평생 딸을 기이한 방식으로 옭아맨다. 가족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지만 딸은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라 믿는다. 희귀 언어 사용자 같은 두 사람.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딸. ‘오직 두 사람’은 서로에게는 ‘오직 한 사람’이므로,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 속에 그녀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을 마주하게 된다.(「오직 두 사람」)
윤석의 아들 성민은 세 살 때 유괴되었다가 십일 년 뒤 그에게 돌아온다. 오랫동안 배포해온 전단지 속 사진과는 달라진 얼굴로. 아내는 조현병이 심해져 아들을 몰라본다. 십여 년간 윤석은 좋은 집과 직장과 평범한 일상을 다 바쳤다. ‘내일부터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행복 그 비슷한 무엇을 잠깐이라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없다. 한편 어릴 적 유괴되었던 성민은 자기가 유괴된 사실도 모른 채 성장했다. 다니던 학교, 살던 집, 엄마인 줄 알았던 사람과 이별하고 완전히 새로운 환경을 원래 자신이 있을 곳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바닥에 대자로 뻗은 윤석을 구석구석의 전단지 묶음들이 노려보고 있었다. 윤석은 전단지 한 장을 집어 그가 십 년 동안 찾아 헤맨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금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아이보다는 전단지 속의 아이가 그에게는 훨씬 더 친근했다.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어. 너무 이상한 애가 나타났어.
_64쪽, 「아이를 찾습니다」에서
아들을 찾은 윤석과 이제라도 친부모를 만난 성민 모두, 불행하다.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결승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아이를 찾습니다」)
지훈은 뉴욕으로 향했다. 지훈이 태어나자마자 떠났다는 아버지, 그의 유골을 찾으러오라는 탐정의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투자’했다는 아버지는 슈트 몇 벌을 남겼고, 놀랍게도 그 옷은 지훈의 몸에 꼭 맞는다. 부재하던 아버지가 유골함과 슈트로 존재하게 된 기이한 상황.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탐정의 연락을 받고 뉴욕으로 날아온 사람이 지훈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유골로 돌아온 인물은 지훈의 아버지가 맞는 것일까, 유산처럼 남겨진, 몸에 딱 맞는 슈트는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슈트」)
채용 과정의 일환으로 ‘방 탈출 게임’ 속에 던져진 인물들도 있다. 그러나 방을 나갈 수가 없다. ‘공포와 권태의 방’, 그 안에서 방문에 온몸을 던져 부딪쳐보는 인물도 있고, 속죄 기도를 올리는 인물도 있다. 어딘가 힌트가 있으리라 믿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인물, 그리고 헛된 희망도 품지 않고 믿는 것은 오직 ‘우울’뿐인 인물도 있다. 인간의 의지, 주체성은 뜻대로 발휘돼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할 해답을 마련해줄 수 있을까.(「신의 장난」)
“신도 우리의 집사일지 몰라요. 우리를 예뻐하다가도 가끔은 귀찮아하기도 할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 훌쩍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아니면 우리가 신을 떠나거나. 그럼 고난이 시작되는 거죠. 밥이나 주는 집사인 줄 알았는데 실은 전 존재가 그에게 달려 있었던 거죠.”
_246쪽, 「신의 장난」에서
‘인생의 원점’이라 여기던 첫사랑을 잃은 남자, 그에게 ‘인생의 새로운 원점’이 생길 수 있을까.(「인생의 원점」) 창작의 희열을 잃은 소설가에게 “작품이 작가 자신을 배반해버리는”, 작품이 작가를 초월하는 경지에 이르는 필력이 갑자기 솟아난다면 그 소설가는 어떻게 할까.(「옥수수와 나」) 싱글맘이 되겠다는 직원 최은지와 그 직원의 용기와 의지를 질투하는 말기 암 환자 ‘내’ 친구 박인수 사이에서 맛보는 인생의 기묘한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는 대개의 기대처럼 정말 ‘나’의 인생을 보다 성숙한 방향으로 이끄는가.(「최은지와 박인수」)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옥수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신의 장난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