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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일상을 채집해
자신과 사회를 탐구한 8년의 기록
동시대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또 다른 대표작이 국내 초역되었다. 『바깥 일기』는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외부 세계를 관찰하며 자신과 사회를 탐구한 기록으로, 같은 줄기의 작품인 『밖의 삶』과 더불어 사회를 향하는 그의 날카로운 글쓰기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여러 해에 걸쳐 쓰인 일기라는 형식과 「집단의 일상을 포착한 수많은 스냅 사진을 통해 한 시대의 현상에 가닿으려는 시도」(서문)라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공유하는 『바깥 일기』와 『밖의 삶』은 내면이 아닌 주변과 타인을 관찰하고 증언하는 「외면 일기」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이룬다.
에르노는 곳곳에서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권력 관계와 사회 문화적 불평등, 착취와 욕망을 연료 삼아 작동하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읽어 내고, 그 내용을 단순함, 간결함, 평이한 단어 사용을 특징으로 하는 독보적 문체인 「밋밋한 글쓰기」를 통해 전달한다. 그럼으로써 지배 계급의 정돈되고 상식적인 질서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자고, 일견 안정되어 보이는 일상에 파묻힌 변화의 가능성을 발굴하자고 목소리를 낸다.
저자 아니 에르노 Annie Ernaux는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소도시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소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루앙 대학교를 졸업하고 중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해 1971년 현대문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2000년까지 문학교수로 재직했다. 1974년 자전적 소설인 『빈 장롱』으로 등단해 ‘자전적·전기적·사회학적 글’이라 명명된 작품의 시작점이 되는 『자리』로 1984년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하는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로, 사회, 역사, 문학과 개인 간의 관계를 예리한 감각으로 관찰하며 가공도 은유도 없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이룩했다. 1991년 발표한 『단순한 열정』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루며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라는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반(反)감정소설이다. 아니 에르노는 발표할 작품을 쓰는 동시에 ‘내면일기’라 명명된 검열과 변형으로부터 자유로운 내면적 글쓰기를 병행해왔는데, 『단순한 열정』의 내면일기는 10년 후 『탐닉』이라는 제목으... 로 출간하게 된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을 통해 작가는 ‘나’를 화자인 동시에 보편적인 개인으로, 이야기 자체로, 분석의 대상으로 철저하게 객관화하여 글쓰기가 생산한 진실을 마주보는 방편으로 삼았다. 이후 『부끄러움』 『집착』 『사진 사용법』 및 비평가인 프레데리크 이브 자네 교수와의 이메일 대담집인 『칼 같은 글쓰기』 등을 발표했다. 2003년 그녀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되었고, 2008년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선집 『삶을 쓰다』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된 작가로는 최초의 생존 작가가 되었다
출판사 리뷰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
집단의 일상을 채집해
자신과 사회를 탐구한 8년의 기록
이제, 내면 일기를 쓰면서 자아를 성찰하기보다는 외부 세계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더욱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는 확신이 선다. ― 『바깥 일기』 서문 중에서
동시대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의 『바깥 일기』가 번역가 정혜용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국내 초역되었다. 『바깥 일기』는 1985년부터 1992년까지 외부 세계를 관찰하며 자신과 사회를 탐구한 기록으로, 독립적인 작품이면서도 7년 뒤에 발표한 『밖의 삶』과 뿌리가 같다. 여러 해에 걸쳐 쓰인 일기라는 형식과 「집단의 일상을 포착한 수많은 스냅 사진을 통해 한 시대의 현상에 가닿으려는 시도」(서문)라는 목적의식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개인의 체험을 통해 집단의 체험을 이야기하는 에르노의 사회적-자전적 작품들과 구분되며, 『바깥 일기』와 『밖의 삶』은 주변과 타인을 들여다보고 증언하는 「외면 일기」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이룬다. 옮긴이의 표현에 따르면 두 작품에서 〈작가의 눈은 자기 안의 심연이 아닌 바깥세상을 바라보고 작가의 귀는 내면의 목소리가 아닌 타인의 목소리를 향해 활짝 열린다〉.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인가?
전철역, 슈퍼마켓, 쇼핑몰… 익숙한 일상 속 구체적 장면들
그 이면에서 은밀히 작동하는 구조적 불평등
집단의 일상을 포착하기 위해 무엇을 보고 들을 것인가? 에르노가 선택한 대상은 「너무 익숙하거나 흔해서, 하찮고 의미가 결여된 듯 보이는 그 모든 것」(서문)이다. 그는 우리가 매일 그 안에 잠겨 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일상의 구체적인 장소와 사건, 사물과 인물을 끈질기게 채집해 펼쳐 놓는다. 그 가운데는 전철역이나 열차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구걸하는 노숙인, 개성이 제거된 채 멸시를 견디며 일하는 노동자, 저마다 끊임없이 뭔가를 사는 소비자, 화려한 수사로 유혹하는 광고가 있고, 우아하게 계급 정체성을 풍기는 부르주아, 우월감에 취해 사는 작가 집단, 미디어에서 시민을 향해 모욕적인 발언을 내뱉는 정치인도 있다. 스스로를 〈계급 이탈자〉로 칭하며 자기 부류의 목소리를 내고자 글쓰기를 시작한 에르노의 계급적 인식이 그의 시선을 주로 피지배 계급의 면면으로 이끈다면, 그는 곳곳에서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권력 관계와 사회 문화적 불평등, 착취와 욕망을 연료 삼아 작동하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읽어 내고, 그 이면에 소외된 사람들과 더 소외된 사람들이 있음을 말한다.
어떻게 쓸 것인가?
지배 계급의 언어를 해체하고자 한 〈밋밋한 글쓰기〉
작품에 생동감과 풍성함을 더한 〈나〉의 목소리
관찰한 다음에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에르노는 그의 독보적인 문체인 〈밋밋한 글쓰기〉를 이번에도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일명 〈음슴체〉를 남발하고, 불필요한 수사를 최대한 깎아 내며, 쉬운 단어로 간결하게 서술한다. 이는 지배 계급의 유려한 언어를 해체하며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 가기 위한 에르노의 정치적, 문학적 실천으로, 사소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통해 시대를 증언하려는 두 작품의 기획 의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타인들의 대화, 그라피티, 노랫말, 방송 대사, 걸인이 바닥에 쓴 글귀 등의 다양한 기록을 거의 그대로 따온 대목도 자주 눈에 띄며, 에르노는 그 날것의 조각조각을 이어 붙여 〈한 시대의 정신적 풍속도〉(옮긴이의 말)를 그려 내려는 듯하다. 한편으로 그러한 직접 인용은 가능한 한 자신을 지우고 있는 그대로 보여 주려는 의도를 표현한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의도는 어느 정도 실패로 끝나는데, 애초의 계획과 달리 에르노는 〈텍스트 안에 훨씬 더 많이 나 자신을 투여〉하고 만 것이다. 그가 인정한바 모든 기록은 기록 주체의 〈강박과 기억〉에 따른 선택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고(서문), 어쩌면 하고 싶었던 말이 글쓰기 여정을 거치며 점차 더 뚜렷한 형상을 띠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때로는 웃지 않을 수 없게 엉뚱하고 때로는 감당이 안 되게 솔직하며 때로는 아플 정도로 예리한 작가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작품에 생동감과 풍성함이 더해지는 효과가 생겨났다〉.(옮긴이의 말)
이를테면 『바깥 일기』에서 1987년 어느 날의 에르노는 광장을 지나다 아이 두 명이 노는 모습을 목격한다. 아이들은 비행기 놀이를 하는 중이다. 〈둘 중 한 아이가 외친다. 흥분한 어조로, 《난다, 날아!》. 그러다가 피할 수 없는 필연을 확인하듯 숙명론자 같은 또 다른 어조로 덧붙인다. 「처박힌다, 처박혀.」 여러 번, 점점 더 빠르게, 아이는 뱅글뱅글 돌면서 만족스럽게 그 법칙을 되뇐다.〉(58면) 그 장면이 엉뚱해 웃음이 나고, 인간사에 대한 은유처럼 읽혀 소름이 끼치기도 하며, 동시에 덧없고도 생생한 순간에 깃든 아름다움 또한 전해져 온다면, 그것은 에르노가 의도와 달리 텍스트에 끼어들고 만 덕분일 것이다.
정돈된 질서 바깥에 있는 것을 살펴보기
일상에 파묻힌 변화의 가능성을 발굴하기
곳곳에서 암담한 소식이 밀려오고 모욕하는 말과 왜곡하는 말과 욕망을 부추기는 말과 호소하는 말이 쏟아져 뒤섞인다. 어떤 목소리는 너무 커서 다른 목소리들을 집어삼키고, 어떤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들리지 못하거나 순식간에 잊힌다. 걸인이 〈정말로 돈이 없는데〉라고 중얼거리는 말 같은 것. 뉴스에 출연한 유족의 몸짓 같은 것. 늘 같은 자리를 지키면서 서서히 지워져 가는 낙서 같은 것. 에르노가 15년에 걸쳐 보고 들은 대상은 대부분 그런 것들이다.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심지어 위협한다고 느끼게 하여도 우리는 그(것)들을 봐야 하고, 함께 겪어야 하고, 불편함과 위협감이 어디서 비롯하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지배 계급이 요구하는 정돈되고 상식적인 질서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자고, 일견 안정되어 보이는 일상에 파묻힌 변화의 가능성을 발굴하자고 목소리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