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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만난 뒤 시를 알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가?
‘백 사람이 한 번 읽는 시보다 한 사람이 백 번 읽는 시를 쓰라’는 말처럼, 읽을 때마다 다르게 마음에 다가오는 시가 있다.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시로 쓰면,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안고 사는 사람들과 연결된다. 산다는 것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는 것이고, 시를 읽는 것은 마음속 파도 하나를 일깨우는 일이다. ‘당신을 만난 뒤 시를 알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가? 류시화의 시에는 그리운 길을 몇 번이고 돌아가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밤늦게까지 시를 읽었습니다
당신이 그 이유인 것 같아요
고독의 최소 단위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사랑을 만난 후의 그리움에 비하면
이전의 감정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도
시 아니면 당신에 대해 얘기할 곳이 없어
내 안에서 당신은 은유가 되고
한 번도 밑줄 긋지 않았던 문장이 되고
불면의 행바꿈이 됩니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당신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전문
백 사람이 한 번 읽는 시보다
한 사람이 백 번 읽는 시
읽을수록 좋아하는 시가 늘어나는 매혹적인 신작 시집. 어디에서 읽기 시작하든 감성에 호소해 오는 시들. 시 한 편 한 편이 생생하고, 색채 풍부하고, 그리운 감각이 있다. 그 중 몇 편은 실존을 흔들고 번개처럼 마음에 꽂힌다. 시를 통해 언어가 가진 힘을 실감하는 드문 경험이다. 꽃이라든가 새라든가 가시나무라든가, 때로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감성이 있는 문장이란 이렇게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슬픔의 음조로 존재의 시련과 작별을 질문할 때조차 아름답다.
육체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삶, 아프면서도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생을 담은 시적 자기 고백이 울림을 준다. 마치 시인이 직접 독자 옆에 다가와 시를 읽어주는 것 같다. 소리 내어 운율을 밟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즐겁다. 한 권의 좋은 시집을 삶에 들여놓는 일은 불안과 절망의 언저리에 한 송이 고요의 꽃을 피우는 일이다. 사랑과 고독, 희망과 상실, 시간과 운명에 대한 경이감을 그려낸 순도 높은 93편의 시.
뭍에 잡혀 올라온 물고기가
온몸을 던져
바닥을 치듯이
그렇게 절망이 온몸으로
바닥을 친 적 있는지
그물에 걸린 새가
부리가 부러지도록
그물눈을 찢듯이
그렇게 슬픔이 온 존재의
눈금을 찢은 적은 있는지
살아 있다는 것은
그렇게 온 생애를 거는 일이다
실패해도 온몸을 내던져
실패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돌릴 겨를도 없이
두렵게 절실한 일이다
- 「살아 있다는 것」 전문
섬세하고 통찰력 있는 시로
수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준 류시화 시인의 신작 시집
류시화 시의 특징은 인간의 깊은 곳에 있는 다양한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시집의 해설을 쓴 이문재 시인은 “고백하건대 나는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라는 문장 앞에서 꼼짝을 못했다. 고압 전류에 감전된 것 같았다. 한동안 다른 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덧붙여 “이때 ‘당신’은 연인이나 벗일 수도 있고 절대자일 수도 있으며, 갑작스럽게 닥친 병마나 불행일 수도 있다. 그가 누구고 또 무엇이건, 우리에게는 일상적 삶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과 같은 당신’이 있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