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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31 실연의 상처를 치유하고 피폐해진 영혼에 새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떠난 여행길이 갑자기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악몽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 본문 <길 위에서> 중에서
P. 137 ‘너도 섭섭하구나. 그래 테라가 오지 않은 것은 나도 서운해. 하지만 테라는 지금 올 수 없어. 지금쯤 힘겨운 수술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오래 같이 지냈던 주인을 볼 수 없으니 너도 서운했구나!’
고양이가 알아듣든 말든 말을 건넨다. 고양이는 테라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방에서 지낼 것이다.
- 본문 &l... 더보기
P. 163 그는 잠시 서서 목걸이의 푸른 알을 막연하게 들여다보았다. 먼지와 때가 묻어 우중충했던 목걸이가 수난을 당하는 동안 닦여져 제법 그럴싸한 것으로 보였다. 이십오 전짜리 주화만한 깊은 바다의 물빛 같은 푸른 유리알은 모조품 치고 꽤 세공이 섬세하고 정교해 보였다.
“그럴 듯 해 보이는데.”
이틀 전 거라지 세일에서 담요를 사고 오십 전 거스름이 없다면서 딴 것을 하나 더 가져가라고 노파가 부추기는 바람에 얼결에 눈에 띈 푸른 유리알 박힌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그건 1불을 더 내야 해.”
노파의 말에 그가 목걸이를 내려놓자 노파는 선심 쓰듯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사실 오 십 전 짜리 목걸이를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팬던트의 푸른 돌을 봤을 때 그는 마리가 생각났다.
- 본문 <신문지> 중에서
저자소개
문학저널》로 등단
재외동포문학상 입상
소설집 『플라타너스』.
최근작 : <길 위에서>,<허수어미>,<플라타너스>
김영희(지은이)의 말
세월이 참 빠르다.
첫 소설집을 내고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두 번째 소설집이라니......
글쓰기가 갈수록 어렵다는 것만 절실하게 느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도 어쩌랴 굼벵이 기듯 해도 무엇인가 써야하는 관성 때문에 펜을 놓지 못하는 것을.
세상의 흐름이 달라지고 어렵고 힘든 시간들은 끊임없이 밀려온다.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며 이어진 기나 긴 코비드 19, 세계 곳곳을 할퀴고 파괴하는 무서운 기후 재앙들 전쟁 그리고 갑자기 무서운 기세로 달려든 인플레이션. 그들 앞에 선 우리들의 삶이 참으로 초라하고 가엾다.
온갖 세파에 시들고 상처만 받은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일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저쪽 전쟁의 화염에 휩싸인 세계에서 미래를 내려놓고 희망도 버린 채 피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욕심과 독선이 세상을 망치고 젊은이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
우리의 삶은 따져보면 인재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든 모든 것이 재앙의 근원이고 역병 역시 마찬가지고 인플레이션도 그렇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해법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천지에 없을 것이다. 실천이 어려운 것이다. 좀 천천히 가자. 부지런을 떨자.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 만든 편한 것을 물리치자. 좀 더 검소해지자. 욕심내지 말자. 역병을 막고 기후 재앙을 막고 인플레이션을 막는 일이다.
우리를 만드신 조물주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인디언들처럼 원형 그대로 간직하며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방법을 모색해 봄이 어떨까.
재앙과 역병 인플레이션이 아니라도 우리 삶은 충분히 피곤하고 아프다. 원래 여행길이 고단한 것이 아니던가.
나는 마치 전쟁에 내몰린 사람처럼 문자들과 싸우며 글을 쓴다. 이 또한 고단함이 따른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아픔과 고독 고난, 기쁨, 슬픔들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시련 끝에 얻어지는 것들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악착같이 아등바등 사는 것일까?
황혼이 온다. 저렇게 아름다운 일몰을 보다니!
나는 이제 사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2022년 10월 로스 앤젤레스에서
목차
작가의 말 5
길 위에서 12
고로께 46
옛날 옛날 갓날 갓적에 76
진도 6.3 106
테라 116
젊은 날의 초상 142
신문지 158
별님이 이야기 196
늪으로 날아간 바람개비 222
파약 272
나모의 그림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