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 Overview
“방충망을 가볍게 치니
매미는 정오의 총알처럼 솟아오른다”
세 개의 시곗바늘이 교차하는 순간
중단되는 은둔자의 놀이, 폭발하는 생(生)의 소리
세계의 표면에서 낯선 징후를 포착하는 이수명의 아홉번째 시집
시인 이수명의 아홉번째 시집 『정오의 총알』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30번으로 출간되었다. 전작 『도시가스』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은 개연성이 사라진 세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하는 시 50편을 총 3부에 나눠 묶었다.
목적을 상실한 행위와 소진된 주체,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세계의 평면, 인간과 사물이 구분 없이 배치된 공간,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반복되는 움직임. 이수명의 시는 줄곧 무위에 가까운 조건 속에서 세계의 표면에 머무르며, 그 위를 스쳐 지나가는 미세한 감각들을 기록해왔다. 이번 시집 『정오의 총알』은 시인이 그려온 시 세계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나아가 정지와 무위의 상태를 가로지르며 출현하는 돌연한 생의 운동을 포착한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세계가 정오에 이르자 감각은 급격히 전도되고, 가장 미세한 떨림이 가장 급진적인 사건으로 떠오른다.
정오는 반전의 시간이며, 최악과 최선이 겹쳐지는 시간이다. 가장 약해지는 시간이고, 비로소 강해지는 시간이다. 정오는 관점이 전환되는 시간이다. “아무도 모르는 집”(「시인의 말」)에 은거하던 이가 외출하는 시간이다. 정오는 폭발이 다가오는 시간이다. 세계는 폭발을 앞두고 있다. 물론 우리가 기대했던 종류의 폭발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기대하며 매달리는 희망과 가능성을 소거해버리는 폭발일 것이다.
─이희우 해설, 「반전의 시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