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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장』,「즐거운 편지」의 시인 황동규의 열 두번째 시집.
그의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는 고백은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그냥 마음 없이"사는, '비움'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다. 비움은 애초에 '무(無)'였으므로 아무런 제약도 제한도 없다. 그의 자연스런 발걸음은 우포늪과 해미읍성을 거쳐 "휴대폰 안 터지는" 이름 모를 골짜기에서의 탁족에 이른다. 느긋함 속에 그가 이야기하는 삶의 방식이 있다.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탁족」도 실려 있다.
책 속으로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 p. 14
가을날 해거름 때 천수만에서 만나 헤어진 기러기 떼를 겨울 저녁 해남군 산이면 영암호에서 만난다. 천수만의 하늘, 그대 대오에서 떨어져 날던 기러기들도 거기 끼어 있을까? 힘겨워 뒤진 자도 있었겠지만 새파란 하늘을 혼자 날고 싶은 자도 있었을 것이다. 대오에 끼지 않는 기러기까지 끼어야 하나의 하늘을 나르는 기러기떼가 완성된다.
상상력의 원형은 부활이다. 유일신적 상상력은 일회의 부활이요, 다신적 상상력은 다중의 부활일 뿐. 그럼 무신적 상상력은? 허허로운 자기 복제 부활일까. 유든 무든 틔울 싹을 품고 틔울 곳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 땅이여, 이들을 살살 때려다오.
꿈도 부활이다. 상상력은 졸아들면서 더 진해진다. 체온이 떨어지면서 하늘이 더 새파래진다. 그 색깔이 오늘 약간 흔들렸다. 내일은 하늘 가득 풍성한 깃털 눈이 날릴 것이다.
상상력의 원형은 부활이다. 유일신적 상상력은 일회의 부활이요, 다신적 상상력은 다중의 부활일 뿐. 그럼 무신적 상상력은? 허허로운 자기 복제 부활일까. 유든 무든 틔울 싹을 품고 틔울 곳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 땅이여, 이들을 살살 때려다오.
꿈도 부활이다. 상상력은 졸아들면서 더 진해진다. 체온이 떨어지면서 하늘이 더 새파래진다. 그 색깔이 오늘 약간 흔들렸다. 내일은 하늘 가득 풍성한 깃털 눈이 날릴 것이다.
--- 책 뒷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