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 Overview
서경식이 소개하는 그림은 이미 100년에 가까워지는 세월에 풍화된 듯 어두침침하고 죽음의 기운마저 어른거리지만, 이상한 생기로 번쩍인다. 바로 코로나 팬데믹과 전쟁, 폭력이 끊이지 않는 지금 우리 시대와 꼭 닮았기 때문이다. 그는 묻는다. “이 어두운 시대에 미술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카무라 쓰네, 사에키 유조, 세키네 쇼지, 아이미쓰, 오기와라 로쿠잔, 노다 히데오, 마쓰모토 슌스케. 분명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서경식은 ‘편애’하는 예술가라고 소개한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자신은 미각과 음감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침윤’된 미의식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일본미술에 애증이 뒤섞인 굴절된 마음을 품는다고 고백하면서. 그가 고른 일곱 미술가는 ‘일본’이라는 질곡 아래 발버둥 치면서 보편적인 미의 가치를 추구하며 싸워 나간 이들이었다.
이른바 일본미술계의 ‘선한 계보’를 체현해 온 ‘이단자들’이다. 과감한 개혁자이기도, 비극적인 패배자이기도 했다. 그는 묻는다. “조선 민족의 일원인 내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들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이들의 작품에서 내가 느낀 매력을 ‘조국’의 사람들과도 과연 공유 가능할까?”
여섯 명의 화가와 한 명의 조각가가 살아 온 삶과 작품을 바라보면 ‘근대 일본’이라는 문제가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 어려운 문제와 온몸으로 격투하다가 요절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난문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근대’로 끌려 들어갔던 우리에게 한층 더 복잡한 ‘응용 문제’로 다가온다.
전범국가 일본에도 "'일본'이라는 질곡 아래 발버둥 치면서 보편적인 '미'의 가치를 추구하며 싸워 나간 이단자들, 일본 미술계의 '선한 계보'"(5쪽)에 속하는 이들이 있었다. 서양미술 - 서양음악 - 조선미술을 거치며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눈으로 본 세계를 기록해온 서경식 선생이 드디어 일본 근대미술을 소개한다.
한국의 근대미술사에 아로새겨진 이쾌대라는 이름이 있다. 서경식의 전작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서 자세히 소개되기도 한 그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이라는 그림이다. 1934년 동경의 미술대학에 입학한 후 이쾌대는 이중섭, 김학준 등과 어울려 동경에서 조선적인 서양미술을 꿈꿨고, 조각가 권진규는 그의 연구소에서 미술을 배웠다. 아름다움을 위해 모든 걸 바쳤지만 마냥 아름다울 수만은 없던 그들의 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본의 근대를 알아야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 이단자들의 외로움이 서경식과 공명한다. 죽음을 들고도(해골을 든 남자의 자화상은 서양화의 '바니타스(허무)'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평온한 나카무라 쓰네의 얼굴을 보며 그는 "불행의 불행을 거듭한 끝에 죽어 갔으면서도 어째서 이 남자는 미칠 듯 노여워하지도, 울부짖지도 않고 이렇게 달관한 듯 고요한 표정일 수 있는가?"(19쪽) 하고 묻는다. 벨 에포크의 파리가 아닌, 으스스하고 쓸쓸한 파리를 스케치한 사에키 유조의 순수한 열정을 두고 그는 "순수한 영혼에게 겨우 숨통이 트였던 때는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에 끼어 지극히 짧았던, 허구의 평화가 잔존했던 시기에 지나지 않았다."(72쪽)고 애석해한다. 마냥 감탄하지도, 마냥 비판하지도 않는 자리에 서서 서경식은 자신이 놓인 그 '사이'를 바라본다. 2권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목차
책머리에
죽음을 들고 평온한 남자 ―나카무라 쓰네, <두개골을 든 자화상>
저리도 격렬하게 아름다운 노랑, 빨강, 검정이라니 ―사에키 유조, <러시아 소녀>
열아홉 소년이 그린 ‘비애’ ―세키네 쇼지, <신앙의 슬픔>
‘검은 손’ 그리고 응시하는 ‘눈’ -아이미쓰, <눈이 있는 풍경>
고투는 미다! ―오기와라 로쿠잔, <갱부>
들꽃의 조용한 에너지 ―노다 히데오, <노지리 호숫가의 꽃>
변경에서 태어난 근대적 자아 ―마쓰모토 슌스케, <의사당이 있는 풍경>
후기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