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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며,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로도 널리 알려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의 고독』이 국내에 최초로 완역, 출간되었다. 민음사는 이 작품을 독점 계약하여 아르헨티나에서 1967년 처음 출판된 판본을 바탕으로 완역하여 출판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전세계 30여 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으며, 2천만 명의 독자를 사로잡은 소설이다.
민음사에서 독점 계약한 이 작품은, 민음사 보르헤스 전집을 완역한 고 황병하 선생이 번역하기로 계약되어 있었으나 1998년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까닭에, 조구호 선생이 이를 이어받아 처음부터 다시 번역한 것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은 지금까지 여러 군데 출판사에서 번역되었고, 또 국내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번역 대본으로 사용하고 있는 판본이 영어본이거나, 그마저도 중역이 아니면 출처 불분명한 번역본(중복 출판)을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조구호 선생은 기왕에 나온 작품 중에서도 뛰어난 번역이라 할 수 있는 안정효 선생의 번역(문학사상사, 『미메시스』가 선정한 최고의 번역가와 번역작품)에도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보고, 보다 원전에 충실한 번역을 하고자 하였다. 단적인 예로, 문장의 흐름을 임의로 끊지 않았다는 점(원본에 있는 구두점과 번역서에 있는 구두점이 같다)과 단락 구분을 임의로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옮긴이는 “스페인어로 씌어진 원본을 ‘단 하나의 가감도 없이’ 번역하려 노력”하였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번역자는 또, 흔히 번역 과정에서 하는 우리말 교열이나 윤문에도 주의했다. 교열 · 윤문이 심할 경우, 우리말로는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지만 원문의 의미를 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작품의 첫머리(1장)에서는 “세상이 생긴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많은 것들이 아직 이름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지칭하려면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켜야 했다.”라고 한 대목이 나온다. 그래서 나중에 가서야 ‘얼음’이라는 사물이 나오는데, 이때 이전까지는 ‘얼음처럼 차가운’이라는 비유는 쓸 수 없는 것이다. 나중에 그 사물이 ‘얼음’으로 불렸을 때 이후에야 비로소 ‘얼음처럼 차가운’이라는 비유가 성립될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번역본들은 원본에는 없는 이런 비유를 우리말 교열 · 윤문 과정에서 집어넣거나 창작해 낸 것이다.
또한,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사용한 다양한 어법 구사, 언어유희를 원문 그대로 살린 대목도 주목된다.
예를 들면, 안정효 번역본(문학사상사, 57-58쪽)에서는 “그들은 함께 모여 앉아서 끝이 없는 지루한 얘기들을 주고받으며, 똑같은 농담을 몇 시간씩 되풀이하고, 거세시킨 수탉 얘기를 자꾸만 계속했다. 얘기가 끝나면 얘기하던 사람이 그 얘기를 또 듣겠느냐고 묻고, 그러면 둘러앉은 사람들은 그 얘기를 또 해달라고 하고, 그러면 같은 얘기를 또 하고 ……혹시 누가 그 얘기를 듣기 싫다 하더라도 그는 그 얘기를 되풀이했고, 얘기를 또 해주랴고 물었을 때 아무 대꾸가 없어도 또 그 얘기를 되풀이했고, 그 얘기가 자꾸만 계속되는 동안에는 아무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밤이 새도록 똑같은 얘기는 끝없이 되풀이되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를 조구호 선생은 “함께 모여 앉아 끝없이 얘기를 주고받고, 똑같은 농담을 몇 시간씩이나 되풀이하고, 거세시킨 수탉 얘기를 신경질이 날 정도까지 비비 꼬아서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얘기하는 사람이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거세시킨 수탉 얘기를 또 들려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얘기를 듣는 사람이 그러라고 대답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듣고 싶다고 대답하고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던 사람들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대답하라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부탁한 적이 없으며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고, 얘기를 듣던 사람들이 자리를 뜰라치면, 얘기를 하는 사람은 자리를 뜨라고 부탁한 적이 없고 단지 거세한 수탉 얘기를 그들에게 해 주는 것을 원하는지만 물었다고 말하는 등, 그런 식으로 며칠 밤이 새도록 지속되는 지독한 모임에서 밑도 끝도 없이 장난을 쳐 대곤 했다.”라고 번역한다.
앞의 번역에서는 원문이 축약되어 있고 가르시아 마르케스 특유의 언어유희를 느낄 수가 없는 반면, 조구호 선생의 번역에서는 원문에 대한 충실함과 함께 ‘언어유희’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